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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선거판을 본다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선거판을 본다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5.06.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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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상대방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거제시민뉴스 정순국 대표

오는 6․4 지방선거에 나설 주자들의 면면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30일 시장을 비롯해 도․시의원에 나설 본선 출전 명단을 발표하면서 ‘교통정리’가 끝난 분위기다.

경선에 참여했다가 빠져나온 한 명의 예비후보가 ‘시장 후보경선 무효 가처분’신청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리지만, 현재까지 액션은 없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시장후보선출을 놓고 다소 삐거덕거리지만 이내 정리가 될 것 같다. 한 예비후보는 야권의 승리를 위해 1명의 무소속 후보를 포함한 ‘원샷 야권단일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뜻대로 되질 않는다.

이렇듯 여당이나 야당이나 경선과정에서 다소 잡음은 있었거나, 있지만 대충 정리됐다.

이제, 여당 야당 무소속 모든 ‘선수’ 들은 저마다 가문의 영광과 개인의 명예를 위해 본격적인 ‘고지 쟁탈’에 나설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었지만, 그래도 선거판은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면 “어쨌든 세상은 돌아간다”는 한 지인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놀랍다.

금방 세상이 뒤집히고 모든 것이 멈춰질듯해도, 선거판은 꿋꿋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비열하고 멍청한 어른들로 인해 숨져간 아이들에게 죄인이 되어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든 별 관심이 없었다. 상황이 이럴 진데 출마자들의 면면을 파악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사생결단의 정치가 꼴 보기 싫어서 선거판으로부터 등을 지고 앉아 있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까지 겹치면서 ‘세상이 이 지경인데 무슨 선거냐’며 우리는 선거판에 환멸을 느낄 정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누가 한들 뭐가 달라지겠어’,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스스로를 선거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의 혁명’은 요원하다. 이렇게 넋을 놓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벼슬 한 번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을 마치 멸치 떼 취급하며 그물로 퍼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 우리는 한방 먹여 보겠다고 벼르지 않았던가.

선거일을 30 여일 남겨두고 있다. 아직 시간은 있다.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후보자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분명 제대로 된 인물이 눈에 들어 올 것이다.

눈을 부릅뜨면 어떤 이가 25만 거제시민을 이끌어 갈 역량과 비전을 가졌는지 가려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물이 있는지 잘 살펴보자. 소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21세기 리더십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에서 나온다”고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이야기 했다.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 것이다.

김 교수는 우선 소통의 기본원칙은 내가 이야기하면 상대편에게 순서를 넘겨주는 ‘순서 바꾸기’와 상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 바꾸기’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원칙 중에 하나라도 무너지면 소통은 불가능해 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이젠 권력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더더욱 돈은 아니며,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선거 때가 되면 평소 알고 지내던 후보자들의 행동거지를 보면서 뭐가 소통인지 헷갈린다.

어떤 때에는 그 사람을 보면서 깜짝 놀란다. 말 많고, 편향적이고, 독단적이고, 포용력 없고, 고집불통이던 평소의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술자리 때마다 혼자서 이야기를 주도하던 그는 자취를 감추고, 유권자들의 ‘잔소리’에도 연신 메뚜기처럼 머리를 끄덕인다. 듣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유권자가 왕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은 잘 안 바뀐다.

솔직히 50년 60년 세월을 살아 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어지는 것이 만무하지 않은가. 더구나 이 순간만 ‘나 아닌 나’로 살겠다고 작심하고 ‘일단 뺏지만 달자’고 덤비는 사람은 아예 싹수가 노랗다. 정치인에게 진정성이 최고의 덕목으로 요구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나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믿는 그런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소한 시장의 역할이 무엇이고, 의회가 뭐하는 곳인지 잘 알거나, 미리 공부한 사람이면 좋겠다.

4년 임기 중에 2~3년을 뭘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농로와 마을안길 포장 사업비나 따내는 것이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곤란하다. 그리고 지역구에서 ‘의원님’ 얼굴 보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워서도 안 된다.

특히 ‘벼슬’을 자신의 사업을 키우는 하나의 ‘도구’ 쯤으로 생각하고, 선거 때 얼마를 써도, 당선만 되면 ‘본전’ 이상을 건질 수 있다고 여기는 인물은 절대 안 된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정치를 사악한 행위로 전락시키는 그런 인물은 안 된다. 우리는 도덕적이지 못한 정치인의 권력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유권자들은 사실 선거가 싫다.

근본적으로 선거는 정치인 자기들만의 전쟁이고 잔치판이지, 우리들의 삶과는 별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있고, 정치에 대한 불신도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이럴수록 유권자의 힘이 무언지를 보여야 한다. 그저 싫어서 선거판으로부터 등을 돌린다면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그러면 정치인들도 유권자들을 늘 장기판의 졸(卒)정도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선거만 끝나면 뒤바뀌는 갑(甲)과 (乙)의 관계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 세상이 온통 난리가 났다. ‘세월호’의 ‘세’자만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다. 눈 뜨고, 귀 열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지쳐 있다.

그렇다고 권력만 쫒아 부나방처럼 선거판을 향해 돌진해오는 인물을 알면서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유권자들이여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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