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3:23 (금)
거제 반곡서원문학 6. 신구(申球)
거제 반곡서원문학 6. 신구(申球)
  • 거제시민뉴스
  • 승인 2014.01.28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구(申球, 1666년∼1734년) 선생은 조선 후기의 유생(儒生)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관(綰), 자는 군미(君美), 고려개국공신 숭겸(崇謙)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육(堉)이며, 아버지는 여규(汝逵)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로 수(脩)의 현손녀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제주도에 안치된 송시열을 위하여 소를 올렸고, 1716년 7월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유생 60명이 연명하여 소를 올릴 때, 그 소두(疏頭)가 되어 윤선거(尹宣擧)와 그의 아들 증(拯)을 논핵하여 그들의 관작을 추탈하고 윤선거의 문집을 훼판하게 하였다. 1722년 신임사화로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영조가 즉위하자, 1724년 방환되어 영릉(英陵)·희릉(禧陵)의 참봉을 지냈으나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쫓겨나 고향으로 은퇴하였다. 당시 거제반곡서원을 창건한 유림 중, 한 분인 윤도원(尹道元) 선생과 년배가 비슷한 막역한 사이로써, 거제반곡서원에서 교우를 나누었다. 신구 선생의 묵암집(默庵集)에 거제유배생활과 윤도원 선생의 글이 남아 전하고 있다.

1). 윤도원(尹道元)의 '제경수와설(題檾叟窩說)'

 거제학자 윤도원 선생은 호는 경와(檾窩, 林窩), 부(父)는 윤상림(尹商霖)이며, 임진왜란 선무원종공신 윤승보(尹承輔) 윤영상(尹榮祥) 윤흥량(尹興良) 윤개보(尹茶軒) 공신을 배출한 거제명문가 '칠원 윤씨' 집안으로, 문장이 뛰어나 선비들이 그를 많이 따랐다한다. 1704년 숙종 30년에 거제 유림 옥삼헌(玉三獻), 김일채(金一彩), 윤명한(尹命翰), 허유일(許愈一), 신수오(辛受五) 등과 함께 거제 반곡서원 창건했으며, 죽천 김진규의 거제도 제자이기도하다.  신구(申球)선생은 1722년 가을 신임사화로 거제로 유배되어 1724년 영조 즉위와 함께 방환된 조선 후기 선비이다. 선생이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인근에서 귀양살이 할 때, 거제 유림 윤도원 선생을 만나 서로 교우하며 지냈다. 당시 두 분 선생은 모두 50대 후반의 늙은이였으며, 시경과 논어 맹자뿐만 아니라, 도가에도 상당한 조예가 깊었다. 아래 글은 윤도원 선생이 신구 선생을 보고 느낀 점과, 저지대 물가에 사는 어저귀 풀을 보고 옛 성현의 말씀을 비유하며, 깨달음을 얻어 지은 글이다. 어저귀는 곧은 줄기와 흰 속이 통하고 껍질이 단단히 졸라 매여 있는 곧바른 모습에 두 분 선생 모두 사랑하셨다. 또한 윤도원선생은 신구 선생이 강직하고 박식하며, 지조 높은 학자로 어저귀를 닮은 분으로 기술하고 있다. "경수와(檾叟窩)"는 신구 선생이 어저귀를 닮은 늙은 학자라고 붙여진 제목이며, 윤도원선생의 호가 여기에서 유래해, '경와(檾窩)'였는데 후세사람들이 '임와(林窩)'라 칭했다.

◎ 제경수와설(題檾叟窩說) / 윤도원(尹道元),  1722년 12월 하순 作. 신구(申球) 묵암집(默庵集), 거제 귀양 살 때(謫在巨濟時).                            

1722년 경종2년, 임인년 가을에 묵묵하고 고지식한 사람(申球)이 죄를 얻고는 조정에서 내쫓겨 남녘의 거제고을로 귀양 왔다. 묵묵하고 우직한 분이 궁벽한 변방에서 도깨비를 막으며, 깊은 시름에 두문불출 하다가 갑자기 쇠약한 한 늙은이가 흰 저고리에 누런 관을 쓰고 나왔다. 영접하는 위쪽에 앉아 함께 마주보며 말하니 말과 안색이 너그럽고 기질이 매우 아름다웠다. 마음이 바르며 생각이 곧고 뜻은 깨끗하며 행함이 떳떳했다. 나의 생각엔 옛날 하상장인이 귀양 가, 강가에 살았던 분으로 여겨졌다. 마음이 심히 자애로운 말을 남기며 하룻밤을 묵었다. 이별에 임해 소매를 드러낸 것을 자위하며 '경수기' 한편을 알린다.

[崇禎紀元後九十五載壬寅秋 默愚子以罪黜於朝 謫于南州之歧城 歧乃我國之荒胎也 大海四繞 南蠻爲隣 眞有罪者之所宜處也 默愚子禦魅窮荒 杜門深坐 忽有一老翁縞衣黃冠 自外而入 迎之上坐 與之對語 則言貌休休 氣質純美 心正而意直 志潔而行方 余意以爲古者河上丈人之流也 心甚愛之 因留語一宿 臨別袖出所自爲檾叟記一編以示之 ]

묵암(默愚) 신구(申球)가 말하길, "어저귀에서 무엇을 취하려 하느냐?" "나(尹道元)는 초목을 설명한 주해를 본 적이 없어 어떤 풀인들 알지 못한다." 신구(申球)가 웃으며 말하길, "여기 훈몽자회가 있다네" 귀한 풀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그 의미를 일러준다. "습한 저지대에서 곧잘 생겨나고 이러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한데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나는 유독 그 곧은 줄기와 흰 속에 속이 통하고 그 껍질이 단단히 졸라 매여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고로 나는 그 결백하고 정직한 의(義)를 취(取)하여 이에 호(號)로 삼았다.

나도 또한 연로하다. 그러므로 늙은이라 스스로 부른다. 묵옹(默翁)은 이에 정당한 호칭으로, 늙은이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윤도원(尹道元)]는 알았노라. 가히 그 긴요한 점을 얻을 수 있고 그 취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아~ 천지는 광대하고 성현은 심히 위대하도다. 다른 뜻이 아니고, 곧고 바를 뿐이다. 요임금은 이것들을 순 임금에게 전하였고 순은 이것을 우왕 탕왕 문왕 무왕에게 차례로 전해졌다. 우, 탕, 문, 무왕들이 주공과 공자에게 전하여 주공과 공자는 또한 이것을 안자, 증자, 자사, 맹자에게 전하였다. 정주의 도덕과 한유와 유종원의 문장에는 모든 근본이 곧고 바름이로다.

이런 까닭에 공자가 가라사대, 사람의 삶이 곧고 바름이다. 맹자 가라사대, "곧음으로써 길러서 해함이 없으면 곧 천지 사이에 차니라" 하였다. 성현은 곧게 길러내고 닦는 방법에 따르니, 그 의미가 깊다. 주자가 임종하기 3일 전에 재능 있는 문하생에게 간곡히 당부하며, "정직하게 말하고, 허물이 없도록 하라"일렀다. 늙은이가 곧고 바른 까닭에 호를 따서 지었다. 정말로 그 긴요한 점은 얻고자 아니하며 그 취지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물건으로 인해 자신을 깨우치고 명분을 생각해 의(義)를 취한 바, 지극하고 극진하였다. 아~ 어저귀는 진펄 물가에서 생겨나고 늙은이는 갈림길에서 나타난다. 본디 천하의 모든 이가 한 형제로 어질며, 근본이 서로 달라도 살아있는 것들이다. 늙은이는 능히 그 곧고 바름을 취하여, 몸에 익히게 된다. 그 의(義)를 생각하며 자신부터 행한다.

일언일묵(한마디 말에 한 번의 침묵), 모두 곧음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일동일정(때로는 움직이고 때로는 조용함), 반드시 곧음을 근본으로 삼아야한다. 옛날엔 정직하지 않음이 없었고 가는 곳마다 정직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리고 마음이 밝아져 도(道)를 닦게 되고 그 마음이 깨끗해지니 행동도 발랐다. 안으로 살펴 병통이 없으면 홀로 있어도 부끄러움 없다. 어저귀가 곧고 바르니 늙은이로 인해 더욱 곧음이 나타난다. 늙은이{신구(申球)}의 가르침, 어저귀로 인해 더욱 큰 가르침에 이른다. 성현이 되는 것은 도(道)에 의한 것이다. 믿음은 바깥을 탓하지 않음이다. 공자 가로사대, "사람이 능히 도(道)를 크게 하지, 도(道)가 사람을 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강직함을 찾을 수 있다. 아아~ 넓혀 충실하게 하고 몸을 가꾸어야 한다. 그 의로움을 취하고 몸을 곧게 하면 모두를 얻으리라. 자신의 몸을 곧게 하지 않고 그 의로움을 생각지 않으며, 그 의로움을 쉽게 취하고 본질을 행하지 않으면서 어찌 그 취한 의로움을 높이 받들 수 있겠는가? 아침저녁으로 눈여겨 주목해서 본다. 스스로 힘쓸 뜻이 있어, 정자의 이른바, 공경으로써 곧바로 하는 것이다. 몸을 바르게 하고 정직함을 함양하는 것이 도(道)다.

[默愚子曰奚取於檾也 吾未曾見於草木箋注 則吾未知爲何草也 翁笑曰此在訓蒙會 而俗訓於佐貴草也 好生於下濕而其爲物至微 人自不知耳 余獨愛其體直其裏白其中通其皮堅勒 故余取其白直之義 仍以爲號 余又年老。故以叟自稱耳。默翁曰翁之取號之義。我知之矣。可謂得其要而知其旨者也。噫。天地之普也。聖賢之大也。不外乎直耳。堯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湯文武。禹湯文武傳之周公孔子。周公孔子又以是傳之顔曾思孟。程朱之道德。韓柳之文章。皆本於直。

是以孔子曰人之生也直。孟子曰以直養而無害則塞乎天地之間。聖賢所以養之於直者。其義深矣。朱夫子於易簀前三日。叮嚀於門人者。不過曰直。則翁之所以取直而爲號者。果不爲得其要而知其旨者也歟。仍物喩身。思名取義者。至矣盡矣。噫。檾之生於隰。翁之出於歧。固天地同胞之仁。則本不相須而生者。而翁能取其直而體之於身。思其義而行之於己。

一言一默。皆由於直。一動一靜。必本於直。無往非直。無處非直。而白其心而修其道。潔其心而正其行。內省不疚。屋漏無愧。則檾之直。仍翁而直益著。翁之學。仍檾而學益臻。爲聖爲賢之道。亶不外是。孔子曰人能弘道。非道弘人。直在其中者歟。嗚呼。擴而充之。體而養之。斯得爲體直取其義。而徒取其體而不思其義。徒取其義而不行其實。則烏在其取義揭。朝夕寓目。有以自勵之意也。程子所謂敬以直之者。體直養直之道也 ]

詩曰 시경에서 말하길, < 淇奧(기욱)-기수의 물굽이 > 詩經 衛風(기욱은 기수의 벼랑).

[瞻彼淇隩。綠竹猗猗。有斐君子。如切如磋。如琢如磨。瑟兮僴兮。赫兮咺兮。有斐君子。終不可諼兮]“보라! 저 기수의 물굽이 마디풀이 우거졌네. 어여쁘신 우리 님은 뼈와 상아를 다듬은 듯, 구슬과 돌을 갈고 간 듯, 장중하고 당당하여 빛나고 의젓하시네. 어여쁘신 우리 님을 끝내 잊을 수 없구나."

시인이 마디풀이 무성히 우거졌음을 취한 이유는 비유컨대, 군자는 크고 훌륭한 덕이 있기 때문이며, 늙은이도 어저귀 풀처럼 결백하고 정직한 까닭이다. 스스로 몸을 닦고자 한다면 성실해야 한다. 앞뒤 모두 하나의 법도이다. 이런 까닭에 시인(詩人)이 남의 입장에서 취해 비유하는 것이며, 나의 벗의 입장에서 취하여 깨닫는다. 물건으로 인해 의(義)를 취하면 정말로 전후좌우에 서로 거스름이 없게 된다. 또 하나를 말해보면, 어저귀는 더구나 풀 중에 한 물건이나 영지는 근본이 있지 아니한가?, 그것으로써 어저귀 경(檾)을 호(號)로 삼았다. 자칭 늙은이 "수(叟)"라 했는데, 의(義)로써 맞지 않아 늙은이 "수(叟)"를 고쳐 움집 "와(窩)"로 삼았으나 어떨지 모르겠다고 지자(知者)에게 물었다.

[ 詩人所以取綠竹之猗猗。譬君子之盛德者。翁之所以取白直之檾草。欲自修之不怠者。前後一揆。是故取詩人之取譬。曉吾友之取譬。仍物取義。果無前後之相悖者耶。抑有說焉。檾乃卉中之一物。非靈芝有本則以檾爲號。自稱曰叟。不叶於義。改叟爲窩。未知何如也。問乎知者 ]

  / 居一於是焉 翁㓒原尹道元 黑虎殘臘下浣 默翁記 여기 거제에 살고 있는 칠원 윤씨 '윤도원'옹의 글이다. 1722년 임인년 섣달 세밑 하순, 묵옹 신구(申球)가 기록한다.

[주1] 어저귀 경(檾) : 옛날 꽃들 세계에서 왕을 뽑는 대회가 열렸는데 꽃들의 왕을 화왕(花王)이라고 불렀다. 꽃들은 모두 아름답게 단장을 하고 대회장에 나왔다. 장미는 화려함, 백합은 고고함, 양귀비는 요염함, 심지어 호박꽃마저도 활짝 핀 자태를 뽐내며, 제마다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했다. 어저귀도 욕심이 있었지만 화왕이 되지 못하자 스스로 왕관을 만들어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말았다. 이를 알게 된 하늘신이 벌을 내려 머리에 올린 누런 왕관을 시커멓게 만들어버렸다. 그 이후로 머리 위에 까만 왕관을 쓰고 다니게 되었다한다. (어저귀는 노랑꽃을 피우며 왕관모양의 노란열매가 여물어 이어 검은색이 된다).

[주2] 하상장인(河上丈人) : 강가의 늙은이, 기원전 3세기 한나라 문제(文帝) 때 하상에 살았던 은둔한 선비로 도가의 첫 번째 스승, 고대 중국의 신선인 안기생(安期生)이 일찍이 하상장인을 따라 황제(黃帝)와 노자의 설을 배우고 동해 가에서 약을 팔았다한다.

[주3] 정주(程朱) :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정호(程顥)·정이(程頥) 형제와 주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정주학파 : 정주학을 연구하는 학파. 우주론, 윤리관에 있어서는 이기 이원론(理氣二元論)의 위에 서 있고, 수양설(修養說)에 있어서는 지경(持敬)·궁리(窮理)를 중시하여 육왕학파(陸王學派)와 대립한다. 

[주4] 윤도원(尹道元) : 1704년 숙종 30년 갑신에 거제 유림 윤도원(尹道元), 옥삼헌(玉三獻), 김일채(金一彩), 윤명한(尹命翰), 허유일(許愈一), 신수오(辛受五) 등이 거제 반곡서원 창건 함. 죽천 김진규의 거제도 제자.

[주5] 흑호(黑虎) : 60甲子 중 호랑이해는 每 60年間에 걸쳐서 5번 돌아온다. 즉 丙寅, 戊寅, 庚寅, 壬寅, 甲寅年이 그것이다. 이를 굳이 五色을 통해서 설명하다면, 丙寅은 붉은 호랑이(赤虎)요. 戊寅은 누런 호랑이(黃虎)요. 庚寅은 흰 호랑이(白虎)요. 壬寅은 검은 호랑이(黑虎)요. 甲寅은 푸른 호랑이(靑虎)라고 표현할 수 있다.    

[주5] 흑호(黑虎) : 60甲子 중 호랑이해는 每 60年間에 걸쳐서 5번 돌아온다. 즉 丙寅, 戊寅, 庚寅, 壬寅, 甲寅年이 그것이다. 이를 굳이 五色을 통해서 설명하다면, 丙寅은 붉은 호랑이(赤虎)요. 戊寅은 누런 호랑이(黃虎)요. 庚寅은 흰 호랑이(白虎)요. 壬寅은 검은 호랑이(黑虎)요. 甲寅은 푸른 호랑이(靑虎)라고 표현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